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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 장군의 숨결이 머무는 곳 무민사 - 영남연합뉴스

(영남연합뉴스=김상출 기자)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이 극심할 때 부산포를 중심으로 한 해안 일대는 그 피해가 매우 커서 인적이 끊어질 지경이었다. 이때 최영장군이 전략적 요충지였던 부산포 일대에서 왜구를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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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연합뉴스=김상출 기자)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이 극심할 때 부산포를 중심으로 한 해안 일대는 그 피해가 매우 커서 인적이 끊어질 지경이었다. 이때 최영장군이 전략적 요충지였던 부산포 일대에서 왜구를 섬멸하고 격퇴하자 마을 사람들은 최영장군을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시고 그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조선시대부터 매년 제사를 지내온 것이 어느듯 50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무민사는 고려 왕조의 충신이자 장수였던 최영장군의 시호를 딴 사당으로 1397년  (태조6) 태조는 "무민"이라는 시호를 내려 그의 넋을 위로하였다. 무민사 향사는 매년 양력 4월 20일에 최영장군에게 올리는 제사이다.  이곳 무민사 제향은 최영장군의 직계후손들이 직접 참여할 만큼 그 규모나 역사가 널리 알려져있다.

 

최영장군(1316~1388년,고려 말기의 장군,정치가)의 시호는 무민이고,최원직의 아들이다. 유교 사대부와 손을 잡은 이성계와 대립하다가 명나라가 서북면을 요구하자 요동정벌을 주장하여 요동정벌군 총사령관에 임명되었으나 위화도 회군 이후 이성계의 반군에 의해 처형되었다.

 

고려말 원나라에 빼았겼던 함경도 일대 쌍성총관부를 수복하였고,삼남지역 해안에 창궐하는 왜구를 격파하여 "백수 최만호"라는별명을 얻으며 왜구들의 공포 대상이 되었다.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받들어 평생 재물과 여색을 멀리하여 고위관직에 있을때도 청탁이나 뇌물사건에 횝쓸리지 않았다. 외적을 막고 고려왕실을 보호하며 청렴하기까지 했던 최영은 온 나라의 백성으로부터 매우 존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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